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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읽기] '풀꽃', 나태주

misterious Jay 2026. 5. 25. 14:56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글은 텍스트 읽기보다는 담화 읽기로서 쓴 것이다. 시보다는 시인에 대한 읽기에 가깝다.

 

이 짧은 시는 이상하다. 

'너도 그렇다'(마침표가 찍혀 있다.)라는 진술은 언뜻 보면 '예쁘다'와 '사랑스럽다'에 걸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읽기에 따라서는 '자세히 보아야'와 '오래 보아야'에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도 그렇다'를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경험의 누적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너'를 말하기 전에 이미 형성된 것이다. '너'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았기 때문에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너' 또한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게 보일 것이라는 선험적 인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세상사가 다 그렇다는 상식이 아니라면, 정말 이상하게도, 왜 시인은 '너도 그렇다'라고 말했을까. '너'는 누가 보아도 예쁘거나 사랑스럽지 않은데,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이,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너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일 게 틀림 없다. 이런 말인가? 그렇다면 '너'는 특정한 어떤 사람이 될 것이고, 그를 향한 이 발화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다.

모든 말한 것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함축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는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대상에 대한 위로의 발화이다. 어렵지 않게 동의할 만한 '그래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 하고 말하는 그 내용이 왜 굳이 시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일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시의 문제상황이다. 그래서 이 시는 '예쁘다'거나 '사랑스럽다'는 선언(그래서 마침표가 찍힌 것일까)에 관심이 가기보다 누구를 향해(위해) 한 말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이 긴 서론은 짧은 본론과 더 짧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런 오해를 무릅쓰고 누군가(혹은 어떤 이들이) 예쁘지도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다고 여기는 '어떤 이'를 위해 이 시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것이 (혹시 누군가에게는 쓸 데 없는 서론으로 이미 피로했겠지만) 왜 내게 문제 되었는가 하는 의문은 시나 시인이 아닌 나에게도 향한다. 

대개 시에서 꽃을 다루었든, 나무나 시냇물이나 바람, 사슴, 새, 하늘, 별 등등을 다루었든 간에 그것은 그 대상 자체를 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 알고 있다. 풀이 스스로 눕기도 일어서기도 하면 타자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본성을 말하려고, 다리가 놓여 있으면 정지하지 않는 세태의 속성을 말하려고, 병풍이 쳐 있으면 거스를 수 없는 권위와 벽의 존재를 말하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한다. 결국 시는 자연을 노래하든, 한낱 사물을 말하든 간에 인간과 인간의 삶에 관한 정서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풍경시, 전원시, 사물시, 구체시 등등이 인간이 빠진 대상을 시적 소재나 주제로 삼고 있지만, 그것들이 인간에 관한 의미를 배제하고 있는지는 여전한 의문이다. 도화지 위에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듯,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자의적인 언어 기호의 연결로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지만, 누군가 그것을 읽게 되는 순간 (이해하지 못함의 상태를 제외하고) 거기서 의미를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의미 없는(의미를 배제한) 시를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시로 인식되는 순간 의미가 작용한다. 그리고 그 의미 있는 시의 존재성은 그 자체가 인간 지평의 존재 증명이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배운 시이다. 이러한 까닭에 '풀꽃'을 읽으며 나는 이 시의 인간 지평을 경험한다. 거기에 위로가 존재하고, 그 위로의 대상은 인간화되어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그것이 '풀꽃'일지라도. 다만, 이 시가 어떤 어린 소년, 혹은 소녀에게 주는 위안이 아니라면 (이것조차 예의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이가 더 든 사람이 이 발화의 건너편이 있다면 발화 맥락 자체가 매우 부자연스럽고 무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 시는 '풀꽃'에게 주는 시라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이쯤에서 이 시는 의미의 무게에서 조금은 풀려나 있는 듯 보인다. 정말 인간을 향하지 않은 시가 존재한단 말인가?

  


 

 

후기 :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특정된 '너'는 여전히 제목에서 '풀꽃'이라는 이름 없는 존재로 남겨져 있다. 이 일반칭은 기억 속에 심상을 갖지 못한다. 그러니까 어쩌다 다시 이 '풀꽃'을 보고서야 환기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혹은 그저 어떤 심상으로 남겨져 있을지는 몰라도, 어떤 이름을 가진 심상으로 기억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시인의 관심은 '그' 풀꽃에 있지 않고, 이미 일찌감치 '너'라 부를 수 있는 모든 대상에게로 옮겨져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시는 그저 시인의 수첩 어딘가 간단히 적혀 있던 메모였을지도 모르겠다.

 

후기 : 풀꽃을 향해 이 시를 쓴 것이 맞다면, 나는 시인을 가리켰던 '순진무구'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