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이해는 언제나 해석학적 접근의 문제의식과 만난다. 이와 관련하여 나의 관점은 ‘문학적 이해’(혹은 ‘예술적 이해’)가 작품에 의미의 객관적 기반을 둔다고 보는 허쉬(Hirsch, E.D. 1988)의 관점과는 거리를 둔다. 해석의 타당한 근거를 마련해 두고자 했던 허쉬는 ‘의도의 오류’를 지적한 윔셋과 비어즐리(Wimsatt, W. K & Beardsley, C., 1972)와는 달리 역사적 변화에 영향 받지 않는 일종의 이상적 대상(eidos)으로서 의도를 설정하고,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유일하게 바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독자들이 서로 다른 조망에서 다른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작품의 ‘의의(significance)’에 접근하는 것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
따뜻하지 않은 봄날 날빛 드는 창가에 날지 않는 새가 떠날 줄 모른다 묻지 않는 너와 나는 대화를 한다 하루가 잠시는 짧았지말하고 밤은 꽤 길거야듣는다밤은 새삼 추울 거야말하고하루가 꽤 길거야 듣는다 창가에 연민이 머문다 어제는 내린 것이 비였을 거야비유의 장막을 들추면 너는아득한 목소리를 남긴다 새가 장막 속으로 난다날아가지 않는다 (2012.04.12) * 묻는 것은 내 구속의 집으로 그대를 데려오는 것이다. 묻지 않고 대화하는 먼 장면은 노부부의 티테이블처럼 우아하거나 집단적 독백처럼 무료해 보인다. 가까이 가 보면 시간이라는 신뢰의 끈이 그대와 나를 잇고 있다.
주머니 속에 종이 몇 장 잡힌다 카드 쓰고 받은 영수증영수증 같은 반으로 접힌 삼천 원톨게이트 영수증 영수증 같은 순번표 한 장하루가 몇 장의 종이로 손바닥에 앉아 있다 일부는 돈의 흔적으로 남고일부는 돈의 흔적의 흔적으로 남았다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고 나니다른 편 주머니 속은 충만한 허무 하루는 쏜 살의 촉 끝에서 바쁘게 앞서 가고종이들은 손바닥에서 날린다쫓아갈 수 없는 하루는 보내고대신 종이 몇 장 뒤잡는다바쁘게 쫓아가는 척(201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