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우리는 버지니아 울..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망초(忘草)꽃까지 다 피어나들판 한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 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 속에 떴습니다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면 세상이 그 마음의 색으로 물든다. 이 시는 그 단순하지만 쉽게 자각되지 않는 사실을, 어느 보름밤의 체험을 통해 발견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화자의 눈앞에 달이 보인다. 가시나..
자세히 보아야예쁘다 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글은 텍스트 읽기보다는 담화 읽기로서 쓴 것이다. 시보다는 시인에 대한 읽기에 가깝다. 이 짧은 시는 이상하다. '너도 그렇다'(마침표가 찍혀 있다.)라는 진술은 언뜻 보면 '예쁘다'와 '사랑스럽다'에 걸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읽기에 따라서는 '자세히 보아야'와 '오래 보아야'에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도 그렇다'를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경험의 누적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너'를 말하기 전에 이미 형성된 것이다. '너'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았기 때문에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너' 또한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게 보일 것이라는 선험적 인식인 것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박인환, '세월이 가면')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에서 '그 사람 이름'은 잊혀진(잊힌) 상태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잊혀지지 않았다. 이 둘은 독립적이며, '잊음'의 정도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이 시에 등장한다. 이것이 이 시의 시작이며 끝이다. 잊혀진 이름은 그것으로 인해 이미 '무(無)'의 상태*1)이기 때문에 ..
흰 달빛자하문 달안개물소리 대웅전큰 보살 바람 소리솔 소리 범영루뜬 그림자 흐는히젖는데 흰 달빛자하문 바람 소리물소리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어 경덕왕 때 지어지고 혜공왕 10년인 774년에 완공되었다.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석가모니불(대웅전), 아미타불(극락전), 비로자나불(비로전), 관음보살(관음전) 등의 다수의 부처를 모셨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인데, 건물로만도 이천여 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불에 탄 이후로 쇠락을 거듭하다가 1970년대 발굴과 조사를 거쳐 일부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통일신라 시대를 맞아 국가의 중흥을 이루던 시기(신문왕-성덕왕-법흥왕)를 배경으로 하여 불국토를 현세에 이루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경주를 둘러싼 산들 가운데 동남쪽에 위치한 토함산 중턱에..
원문은 인터넷을 검색하시길....이 작품 또한 2026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출제되었다. '오감도 시제일호'(이상)보다는 만만했던 것인지 이 작품에 대해서는 작품 해석을 물었다. 다만 감각적 이미지(표상에 초점이 있겠지.)의 대비를 통해 현실과 꿈의 대립과 그 주제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래 기출 문제에 대한 해설에 작품 읽기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생략한다.다만 아래와 같이 도해를 만들어 둔다. 이 도해에서 주목할 점은 도해 중앙의 원형에 자리잡은 총을 쏘는 순간의 불꽃 이미지이다. 이것은 어두움과 붉음, 현실과 꿈이 대립적으로 공존하다가 일순간 충돌하고 붕괴되게 하는 매개이다. 이 충돌과 붕괴의 지점에 어두움과 붉음은 하나가 되고 현실과 꿈은 뒤섞여 버린다. 하지만 이 혼재가 가..
이 작품도 2026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중등교사 임용후보자 선발경쟁시험) 국어 A형에 '도굴'(정지용)과 함께 출제되었다. 이 작품의 출제는 의외이고 이해하기 힘들다. 출제되어야만 하는 (시문학사적 위상이나 교과서 수록이나 학습자의 접근성이나 해석적 정평이나 어떤 점에서도) 근거를 찾기 힘들고 해석적 안정성은 아주 미약하다. 그 때문인지 B형에 실린 '기항지1'은 해석적 맥락이 비교적 분명한 것임에도 시인의 자작시 해설을 로 제공한 반면, 이 작품은 해석에 관한 문항 설계를 피했다. 이로 인해 문제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출제 취지가 의문이 되는 출제가 되어 버렸다. 학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 않아서 관련 연구도 적고 온전한 작품 해석을 제시한 사례를 찾기도 힘들다. 다만 좀 더 익..
2026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나온 김에 작품 읽기를 해 본다. 텍스트는 각자 찾아서 읽으시길. 나는 평소에는 시어 하나에 꽂혀서 거기서부터 시 전체를 읽어가는 편이지만, 이 글은 임용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시를 어떻게 읽었을지를 되돌아 보면서 비교해 볼 수 있게 교육용 시 읽기(?) 방식으로 읽어 보았다. 먼저, 시를 읽어 가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메모해 둔다. 바다에 갔더니 항구만 있더래.떠나는 배를 기대했더니 정박한 배들만 있더래.눈송이는 내리지도 않고 날아다니고 새는 눈송이를 좇더래.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 주머니에 구겨 넣고 ― 그림자처럼 꺼 버리고 ― 어두운 용골 ― 어두운 하늘 : 화자를 둘러싼 세계 (기본 정조를 형성한다.)대립적 등가성 : 내려가다 ― 들여다 보다 : 반영체(세계..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829-1551 ‘이광필’ 광필아 모든 것을 묻지 않겠다돌아와서 이야기하자어머니가 위독하시다 ‘조순혜’ 21세 아버지가기다리니 집으로 속히 돌아와라내가 잘못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똥을 눈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심인(尋人)’은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다. 신문 광고란에 실리는 작은 사람 찾는 광고들을 가리킨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은 3연에 걸쳐 사람 찾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4연. 이 작품의 작중 장면이 비로소 한순간에 드러난다. 아직 수세식 화장실도 두루마리 화장지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80년대 초반, 화장실은 그야말로 쭈그리고 앉아 신문지를 잘 구겨 화장..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정원(庭園)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세월은 가고 오는 것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모든 것이 떠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