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렷스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 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陸史詩集, 1946) 해석은 맥락적 단서가 최소화되더라도 가능한 것부터 시도하면서 확장시키는 것이 합당하다.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국지적으로 표현된 것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말하자면, 다른 해석이 그다지 높은 설명력을 갖지 못할 경우 취하게 되는 ‘유보적 판단’의 경우에 한한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논란이 ..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구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인문평론, 1939.10) 영화 ‘에일리언’을 보면, 끈적끈적한 액체를 흘리고 다니는, 엄청난 힘을 지닌, 마치 파충류처럼 생긴, 그러나 무어라고 규정하기 ..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우리집도 아니고 일가집도 아닌 집 고향은 더욱 아닌 곳에서 아버지의 침상(寢床) 없는 최후(最後)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노령(露領)을 다니면서까지 애써 자래운 아들과 딸에게 한 마디 남겨 두는 말도 없었고 아무을만(灣)의 파선도 설룽한 니코리스크의 밤도 완전히 잊으셨다 목침을 반듯이 벤 채 다시 뜨시잖는 두 눈에 피지 못한 꿈의 꽃봉오리가 깔앉고 얼음장에 누우신 듯 손발은 식어갈 뿐 입술은 심장의 영원한 정지(停止)를 가르쳤다. 때늦은 의원(醫員)이 아모 말 없이 돌아간 뒤 이웃 늙은이 손으로 눈빛 미명은 고요히 낯을 덮었다 우리는 머리맡에 엎디어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아 울었고 아버지의 침상 없는 최후의 밤은 풀버렛소리 가득 차 있었다. (분수령, 1937) 공..
몇 년 전에 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메일 내용은 아래와 같다.---------------------------------------------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안산에서 고등학교 문학을 지도하고 있는 ○○○입니다.재작년에 한양대 특강 때 교수님 강의 들었습니다. 덕분에 시를 이해하는 안목을 넓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교수님께 메일을 쓴 이유는 표현기법 중에 반어법과 역설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입니다. 학생이 가져온 문제를 풀어주는데 반어법인지 역설법인지 명확하지가 않아서요. 다른 선생님들도 너무 의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인데요.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
한 학생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육사의 '절정'에 대한 설명이 담긴 어떤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학교에서 선생님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 집에 가서 조사해 올 것... 하고 숙제를 내 줬답니다. 그 숙제를 대신 해 달라는 뜻이겠죠? 숙제 받은 학생은 내 학생에게 숙제를 가져와 뜻을 물었고 내 학생은 숙제 받은 학생의 질문을 내게 다시 물으며 첨부 파일로 교과서 해당 분을 휴대폰으로 찍어 보냈습니다. 첨부 파일에는 교과서 본문 일부가 모로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디스크 증세가 있는 목을 기울여 사진 속 본문을 읽고 메일을 읽고 원문을 찾아 읽고 하면서 답장을 써 보내 주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메일이 왔는데, 해당 교과서는 은사님이 책임 저자인 '국어' 교과서라네요. 이런! 보낸 메일은 되돌릴 수..
영화 'Fire with fire'를 보면, 초반 호텔 장면에서 한 여행객이 프런트에 와서 빈방이 있는지 묻는다. 직원이 예약을 했느냐고 묻자, 그는 "All I have are crossed fingers." 라고 답한다. 뭐, 행운이 있기만 바랄 뿐이지...라는 뜻이다. wikipedia에서 crossed fingers를 검색해 봤더니, 초기 기독교에서 신자들 간의 비밀한 기호였다고 한다. 물고기 기호와 비슷한 셈이다. 예수의 십자가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고. 1604년에 스페인의 Francisco Ribalta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예수가 빵을 들고 기도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때 예수의 오른손 모양이 crossed fingers이다. 그러니까 17세기 초 무렵 적어도 스페인에서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