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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고 웃었다

[쓰다] 초원의 집 2

일요일 아침 초원의 집 흑백 텔레비전 속 푸른 들판 그 들판의 세 소녀는 향기로운 시내와 공기들의 한가로운 숨소리를 따라 어울리다가 구름들이 저 멀리에 어깨를 맞춘 언덕의 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었지 배워야 할 것들이 제 스스로 가르쳐 주는 배워야 할 것들에서 배움을 얻는 절망이 제 스스로 위안을 주는 초원의 작은 집 세상의 모든 학교 (2008.04.17)

시 쓰고 웃었다

[쓰다] 죽은 빨간 병아리

아빠, 병아리가 죽었어 작은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응, 그래, 그렇구나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그냥 그렇다고 맞장구치고는 신문을 넘긴다 넘기다가 이상하기도 해라 우리집에선 병아리를 키운 적이 없다 나 모르게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의 음모 아이의 비밀 궁금하구나 익숙한 집안 탐문하는 시선 나 없이 이루어졌을 역사의 흔적을 찾아 아닌 척 집안을 살피다가 창가쯤 눈이 멈추었을 때 화들짝 놀란 보라색 튤립 두 송이 옆에선 꽃봉오리 떨어진 대롱이 힘없이 기댄 창가 아빠, 빨간 내 병아리 금세 내 옆으로 달려와 치켜 올려든 손에 길에 떨어져 있었다는 빨간 죽은 병아리 아무리 봐도 시든 튤립 한 송이 (2008.04.19)

공부를 위한 준비

[성찰] '죽은 빨간 병아리' 쓰기에 대해

새롭자고만 쓰는 시는 아니지만, 쓰고 나서 며칠 지나 보면 시는 어느새 먼저 태어난 것들을 많이 닮아 있다. 아마도 쓰고 나서 차츰 닮게 되는 것 같고, 어쩌면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닮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닮지 않기를 의식한 적이 없으니 닮기를 의식한 적도 없을 터인데, 이것 참, 곤란하다. 눈에 밟히니 온전히 내것 같지도 않고 아닌 것 같지도 않다. 온전하다는 말이 무리다, 하고 위안하려고 해도 신장개업해 놓고 이웃 중국집 짜장면 흉내낸 것 같은 꺼림직한 느낌이 가셔지지 않는다. 호흡론을 제기해 놓고, 나는 과연 어떤 호흡으로 말을 꺼낸 걸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내 자연스러운 호흡이 시로 모습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표현의 강제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바로 앞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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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골이나 있다

너무 자주 화 낸다 절반은 아이 때문이라 치고 절반은 이유를 알 수 없다 화를 내는 게 훈계가 될 수 없기에 그냥 화만 내고 있다 화를 낸 까닭에 화 난다 화를 내고서도 카타르시스는 오지 않는다 같은 얼굴을 하고서 억울해 하는 아이를 본다 성이 나 있고 골이 나 있다 그러니까 화가 난 게다 그냥 화만 내는 게 아니라 야단을 치고 꾸중을 한다 야단을 잔뜩 맞고 절반의 이유는 알겠다 절반은 이유가 없다 스스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면서 다스릴 수 없는 것에 화를 내고서 곧장 야단을 맞고 나니 그제서 온다, 열패감의 카타르시스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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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막차가 심야로

바뀌고 나서 안도의 왁자지껄함이 방해 없는 침묵으로 함께 바뀌었다 바뀌었는데 아무도 기척도 않고 사방이 고요하고 바뀌는 게 없다 우습게도 휴식도 모멘텀도 사라졌다 일년 삼백예순날이 계속 돌아간다 덜컹거리는 것도 없이 바뀌는 것도 없이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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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마찬가지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루고 부지런히 부르면서 - 내일의 할일은 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하는 건 결국 마찬가지라는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더할 수 없이 심오한 저항의 노래를 부르면서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싱겁게 웃으면서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놀면서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공부와 마찬가지인 놀이를 즐겼지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루고 불안한 공기를 떨쳐내려고 - 내일의 할일은 하지 않는다 뿌리치려고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 계속 놀고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골방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고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개중엔 내일의 시위를 준비하고 - 아니다 노는 게 더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항은 - 오늘의 할일은 내일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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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순환

커피 한 잔 뽑아 먹던 걸 식탁 위에 놓아 두었다 한 손 가득 구슬을 들고 있던 막내딸이 집어들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싫증 끝에 방바닥에 뒹굴던 것을 장모가 흙 받아 놓았다 흙에서 새 순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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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시론

상상하기가 수월해서 어린 시절 꿈 속에 자리잡고 있던 끄집어 내었다 꿈 속에서 튀어나왔다 상상 속에 있었다 흩날리는 문자들을 간신히 붙잡고 흔들리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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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60년대식

열에 일곱 여덟은 필시 이렇게 시작한다 큼타칫 큼타칫 큼타칫 큼타칫 듣는 순간 내 머리는 곧장 번역을 시작한다 쿵닥 쿵닥 쿵닥 쿵닥 익숙하고 편하면 그걸로 족한 거다 심장을 조율하고 몸에 살풋 열이 오르면 앳된 스물의 백인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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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오래된 나의 그림자

기어이 둘이 마주섰을 때 태양은 아침을 막 지났고 서글픈 둘의 과거는 기억의 들판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었지 잴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옛일을 호명하며 이별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바람이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네 그리로 햇살은 밀려들어와 그림자 안쪽의 그림자 아닌 곳에 그림자를 만들고 밝고도 어두운 당신이 거기 있었네 우울하고 우울한 내 안쪽 나 아닌 곳의 (2008.05)

misterious 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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