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달빛
자하문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되어 경덕왕 때 지어지고 혜공왕 10년인 774년에 완공되었다.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석가모니불(대웅전), 아미타불(극락전), 비로자나불(비로전), 관음보살(관음전) 등의 다수의 부처를 모셨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인데, 건물로만도 이천여 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임진왜란에 불에 탄 이후로 쇠락을 거듭하다가 1970년대 발굴과 조사를 거쳐 일부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통일신라 시대를 맞아 국가의 중흥을 이루던 시기(신문왕-성덕왕-법흥왕)를 배경으로 하여 불국토를 현세에 이루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경주를 둘러싼 산들 가운데 동남쪽에 위치한 토함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산은 경덕왕 때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그는 일찍이 가난한 여인인 '경조'에게서 태어났다가 죽었고 재상인 김문량의 집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던 석굴암(석불사)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던 중 그가 죽자, 혜공왕 때 국가적 프로젝트로 중건이 이루어져 완성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내용은 1966년 석가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리니경'이 발견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문명화되어 있는 경주라는 삶의 공간과 관광지가 되어 버린 불국사이다.

이곳은 내게 수학여행의 공간이었고 지금도 남아 있는 수많은 여관들(에서 유스호스텔로 바뀌었지만)의 기억이 불국사 경내보다 오히려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불국사는?

이렇게 (칠보교-연화교-안양문-극란전) 보이고,

이렇게 (백운교-청운교-자하문-대웅전) 보이고,
하지만 금방 시들해지고 곧장 목적지를 향해 직진한다. (물론 수학여행이라면 이 앞에서 도열해 있어야 했겠지만.....)


아,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졌다는 다보탑 봤고, 그것보다 숭고미가 있다는 석가탑도 봤고, 사진도 찍었고.....
이것이 대강의 불국사 기행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런 얘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겠지.
1966년 불국사의 발굴과 복원에 대한 얘기가 여기에 덧붙여지는데, 그 얘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보라.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567537.html
불국사가 통일신라 건축물? 박정희 정권 ‘상상력의 산물’
한국 건축문화유산의 대명사라는 경주 불국사는 어느 시대 건물일까? 일반인이라면 열에 아홉은 통일신라 건축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불국사의 대웅전·무설전·비로전·관
www.hani.co.kr
그러니까 원래의 불국사 형태나 구조, 재료와 공법 등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이것저것 다른 시대의 것들이 혼유된 복원 과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발굴 과정에서 백운교, 청운교 아래 연못이 있던 흔적을 발견하여 그려낸 상상도는 현재 우리가 보게 되는 불국사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인용된 글의 필자는 불국사를 '근현대 건축의 산물'이라고 부른다.)


앞서 토함산 주변의 항공 사진을 보기도 했거니와, 불국사는 동쪽 산 정상에서 서쪽을 향해 내려오는 계곡을 따라 남쪽을 향해 펼쳐져 있다. 동남쪽 아래에는 멀리 일주문이 있고, 그 다음에 천왕문, 그리고 자하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구조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동에서 서로 내려가는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동쪽에는 대웅전을 통해 석가모니 세상과 서쪽에는 극락전을 통해 아미타불 극락 세상을 구분해 내고 있기도 하다. 불국사가 지상에 불교적 이상국(불국정토)을 세우고자 하는 바람을 구현한 사찰이라는 것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있을 것이다.

이제 이 공간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 옛 시대의 그곳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라고 썼지만 이 글의 쓰임이 답사지에서의 짧은 강연식 설명에 있으므로 시 읽기를 따라 간다.)
말하자면, 수학여행도 오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것이니 연못 같은 것은 복원하지 말라는 그런 맥락의 불국사 말고, 여관이었든 아니면 유스호스텔이든 관광 단지가 되어 버린 그런 곳 말고, 아직 사람의 흔적도 쉽지 않은 산 중턱의 고요한 불국사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일주문 앞에서 속세(그래 봐야 내 상상의 세계에서 이곳은 이미 고요한 산중일 따름이다. 유스호스텔들이 잔뜩 있는 단지도 숲으로 남겨져 있고 그만큼을 더 내려갔을 때 밭과 논들이 이제 사람의 공간임을 알게 해 줄 뿐이다.)의 번뇌를 털어내고 천왕문을 지나며 잡귀와 모든 악한 기운을 떨쳐 낸다. 그러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들이 세상의 소리를 지워주고 이곳은 고요하지만 또한 신비한 소리들로 채워진 또 다른 공간이 된다.
일주문이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획하고 있다면, 천왕문을 지나 번뇌와 세욕을 벗어내고 이제 개울을 지나 연못 위로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 자하문(紫霞門)에 이르는 그 앞에 서면, 여기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경계지와도 같이 하나의 상징이 된다. 부처님 몸에서 번져 나오는 광채가 자색 안개를 이루는 듯 서려진 이 문 뒤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내 뒤에는 미처 벗어내지 못한 나의 집착과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다.
상상적 체험 속에서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서울에서든, 혹은 경주에서든 이미 내 살던 곳을 떠나 일주문을 통과하여 불국사 경내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공간적으로는 부처님의 법력이 영향을 미치는 세상 내에 있다는 것을 뜻하고, 심리적으로는 경건히 나의 내면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내게는 박목월의 '불국사'의 모든 풍경이 선명히 보이는 듯하지만, 시간적 배경으로는 이미 밤이고 주위에 사람이나 짐승 하나 없다. 이 말을 한 번 더 반복해 볼까.
자하문과 대웅전과 범영루가 보이는 물리적인 장소로는 사찰 마당 앞이 제 격이겠지만, 나는 이 공간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건 내가 자하문을 올려다 보는 백운교 아래 어딘가쯤 서 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는 세속적 세계를 떠나 성스러운 불국사 경내에 와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아직 자하문 밖의 일종의 중간계에 있는 셈이다. 이 공간은 조용하지만 어딘가에서 오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때는 저녁 또는 밤. 아마도 늦지 않은 경계시일 것이다.
흰 달빛
자하문
자하문이란 부처님의 광명이 '자색 안개(紫霞)'처럼 비추어진 문이라는 뜻인데, 달과 자하문 모두 수성, 즉 물의 속성을 가진 대상이다. (이를 등가적 관계로서 계열체를 이룬다고 말하고, 이들 간에는 은유가 형성된다고 한다.) 자하문을 대할 때면 자연스럽게 달빛이 대응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시간적 배경(setting)은 이 자하문 너머의 세계를 인간과 동물들이 물러선 공간, 행위가 멈춘 곳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공간이 되게 만든다. '흰 달빛이 비친 자하문'은 은유에서는 흔하지는 않은 '연접성(connectivity)에 의한 은유'를 갖는다. 자하문은 흰 달빛과 같은 대상으로서 이 문 너머의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은유를 만들 뿐 아니라 그 스스로가 은유가 된다.
달안개
물소리
2연을 통해1연의 공간적 설정은 시각적인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청각적인 것이 된다. 달 안개는 '흰 달빛 / 자하문'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가진 물의 속성은 마땅히 '물소리'로 연결된다. 따라서 2연은 1연이 만든 울림이자 1연의 달빛과 문이 가진 독특한 떨림이 된다. 이 습한 공간에 완전히 동조되어 있는 소리는 이 시의 시공간적 설정이다. 아마도 연못에서 들려오는 소리였을 터이지만 이 소리는 달안개와 함께 온 공간에 가득하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시끌벅적한 세속과 단절된 이 공간의 고요함을 부각한다.
대웅전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3연과 4연은 자하문 뒤의 세계를 상상한다. 역시 이 시적 공간의 설정은 시각적인 것에서 청각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며 반복된다. 이 반복을 통해 1, 2연과 3, 4연이 계열체적 관계에 있게 되는데, 이러한 관계 설정으로 인해 자하문 뒤의 세계가 대웅전의 부처님으로 대치되는 것처럼 달안개 물소리가 바람소리 솔 소리로 대치된다. 4연의 솔 소리는 바람을 통해서만 날 수 있으니 이는 2연의 물소리가 달안개로 인해 형성된다는 이해로 되먹임된다. (그러니 다시금 말하건데 이 물소리는 연못을 거쳐 흘러내려가는 토함산 계곡의 물소리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5, 6연은 여기서 벗어난 듯한 표현을 사용했다. 7, 8연을 마저 읽고 나면 이것이 흔히 볼 수 있는 시의 구조 원리 AABA(여기서 핵심은 변주가 되는 B이다. 이른바 '기승전결' 역시 AABA의 구조이고 여기에도 '전'(전환)이 B의 역할을 한다.)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범영루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범영루는 자하문을 마주 보고 왼쪽을 봤을 때 보이는 누각(불국사 상상도에서 중앙 앞부분)이고 말의 뜻이란 '비친 그림자 다락'이니, 뜬 그림자가 곧 범영루이다. 이미 3연에서 '대웅전 / 큰보살'이라 표현한 것도 같은 표현 방식이다. 범영루의 그림자가 물에 떠 있다는 풀이도 되지만, 범영루 자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그림자처럼 지어 놓은 누각인 셈이다. 범영루, 자하문 아래가 연못터였다고 하니 물안개니 뜬 그림자니 하는 것은 기능적으로도 합당한 이름이라 할 만하다.
이것들은 반복의 표현이지만, 누각이 달리 누각은 아니어도 범영루가 높이 보일 때 마치 떠 있는 그림자처럼 여겨진 것에는 상상의 보정이 더해져야겠다. 박목월이 '불국사'를 쓴 시점은 대략 1954년 경이라고 한다. 해방 후에 대구에서 교사로 일시 있다가 그 후로는 서울에서 대학 출강을 했고 한국 전쟁 이후로도 서울에서 강의를 하다가 한양대에서 교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하니, 1954년이라는 시점은 그가 고향에 내려와 가족과 불국사를 들렀을 때의 정서적 체험 내용을 시로 쓴 것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상상의 보정이란, 이떄의 불국사가 아직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아닌 것을 보고 있기에 사실을 상상해야 한다. 1966년 이전의 불국사란 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시기의 불국사와 비슷하다.

그 후에 위 사진처럼 부분 보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니, 시인이 보았던 범영루의 모습은 지금처럼 담벼락으로 좌우가 막힌 건물이 아니라 차라리 보수, 복원 이전(달리 말하면 파괴되고 소실되어 거의 폐사지처럼 되어 있던) 불국사 사진에 남겨진 범영루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하문 뒤의 대웅전도 담벽에 막혀 가려진 공간이라기보다는 상징의 힘이 구획한 특별한 세계가 된다.
아무튼 이 범영루는 물 위에 뜬 모습으로 경험되고 그 그림자란 물에 비친 모습이니 앞 연들에서와 같은 물의 속성은 여기서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6연에서 '흐는히 / 젖는데'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시각적인 것은 5, 6연에서 확연히 볼 수 있으나, 그렇다면 이것이 청각적인 것으로 전환되지 않았기에 AABA의 B로서 기능하는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범영루란 어떤 곳인가. 여기에는 법고가 있고 과거에는 범종이 있었다고 한다. (둘 다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누각의 좌우는 대웅전과 극락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가운데 범영루가 있어 범종이 울리면 산 기슭 전체를 은은히 울려갈 것이다. 이 소리는 자하문 뒤 흰달빛이 만드는 소리이며, 대웅전 부처님의 소리이다. 그것이 실체이다. 범영루는 그 그림자인 것이고.
범영루의 범종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연못(이 시인이 방문했을 때 있지 않았겠지만 상상적 체험 속에서는 존재하므로) 위에 그림자가 떠 있는 듯 상상은 나란 존재 역시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게 내면에서 소리를 공명시킨다.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따라서 7, 8연은 다시 처음 두 연으로 돌아간 듯 싶지만, 이 공명이 이 불국사가 자리잡은 토함산 기슭의 공간 전체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물소리는 1, 2연에서, 바람소리는 3, 4연에서 왔지)
박목월은 '청노루'에 이렇게 써 두었다.
머언 산 청운사(⾭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
봄눈 녹으면
(박목월, '청노루' 1, 2연)
청운사, 자하산은 모두 실제하지 않는 장소이다. 그리고 작동하는 공간이다. 아마도 청운교, 자하문 같은 이름에서 따 왔을 것인데, 그런 만큼 이곳 또한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달'에서 이 공간은 점점 커진다. 네가 서 있는 거기까지.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박목월, '달')
내동은 현재의 경주시청 부근, 보문 단지 부근, 불국동 인근을 포함하는 곳으로 이 글 두 번째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동은 불국사 남쪽으로 울산에 이르는 곳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거진 경주 전체를 '언저리'로 포함하여 '그 달'이 지나간다. 그것도 배꽃 가지를 반쯤 가리며 달이 간다. (배꽃 가지에 가려진 채 달이 간다는 표현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 시적 진술을 임의로 읽지 않기로 한다면 물리적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시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달은 배꽃 가지를 반쯤 가리면서 가고 있는 것이고, 배꽃 가지가 달의 후경으로 있을 수는 없으니 달이 밝아 그 광채에 배꽃을 반쯤은 지워졌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조금 더 읽으면) 배꽃은 흰색. 밤에 흰 배꽃은 달을 닮았다. 이조년의 '다정가' 초장은 '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인데, 이 말은 배꽃에 달빛이 앉고 은하수가 흐르는 깊은 밤을 가리킨다. 이 시의 맥락처럼 '달'을 읽으면 '배꽃에 앉은 달빛'이 밝아 배꽃 자체가 가려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냥 눈 부시게 밝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이 단지 물상에 머무르지 않고 상징이 되는 특별한 순간이라는 뜻이다. 불국정토를 뜻한 게 아니었을까.
(2026.03.24)
p.s. 학술답사를 경주로 가게 되었다. 아마도 동리목월문학관 앞에서 잠시 얘기를 할 듯하여 함께 읽으라고 남겨 둔다.
'공부를 위한 준비 > 작품 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작품 읽기] '마음의 달', 천양희 (0) | 2026.05.27 |
|---|---|
| [작품 읽기] '풀꽃', 나태주 (0) | 2026.05.25 |
| [작품 읽기] '세월이 가면' (박인환) 읽기 (0) | 2026.03.29 |
| [작품 읽기] '도굴', 정지용 (0) | 2025.12.10 |
| [작품 읽기] '오감도 시제십일호' (이상) 읽기 (0) | 2025.12.10 |
| [작품 읽기] '기항지1'(황동규) 읽기 (0) | 2025.11.27 |
| [작품 읽기] '심인(尋人)' (황지우) 읽기 (0) | 2023.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