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고 웃었다
[詩作] 나는 어느 여름 날 햇볕 쏟아지던 하늘을 기억한다
어딘지도 모르고 다만 버스가 도달한 종점 날은 눈부시고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다 잎 무성한 양버즘나무 그늘로 피해 나는 처음으로 너의 얼굴을 보았다 눈부신 복장을 하고 햇볕 앞에 서서 너는 나를 이 여름날의 증인으로 불러냈다 산 넘으면 바다가 있으리라던 어린 나의 상상은 꿈속에서는 언제나 진실이었지 이 종점에서라면 바다는 진즉 건넜어야 했다 그러니 그건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을 것이다 나는 도저히 도로로 나가 맨눈으로 너를 볼 자신이 없었기에 눈부신 너 대신 차라리 햇볕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이 멀고 돌아갈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2018.6.25)
[자작시] 숲길에서
숲길에서 작은 산길 그 어디쯤에서 나는 멈추었지 나무는 높지 않았지 길은 좁아도하늘은 다 보일 듯 별들이 어둠을 밀어내고서늘한 공기는 뜨거운 가슴을 밀어올리고 있었지밀어올리고 있었지 숲은 달뜬 한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었지 산 위 더 뜨거운 기운들은 달뜬 한 사람을 어두운 하늘에서는 별들이 성큼 다가서고 별들이 지나는 길 그 어디쯤에서 나는 멈추었지밝은 눈을 뜨고, 그이는 보이지 않았지 나무는 높지 않았어도산들을 다 가릴 듯 어둠이 길을 가리고 서늘한 눈은 뜨거운 가슴을 찾아 온 산을 훑었지작은 산길을 오르고 있었지 그 사람은 산길을 걸으면서도 하늘을 보고 있었지숲은 넓어 갈 길이 먼 그 사람은 내게 묻고 있었지 너는 이 땅에서 무엇이냐고 이 높은 곳에 이르러 뜨거운 마음으로 너를 찾고 있을 때도너는 흔적..
[쓰다] 해는 아직
잠시 후 동녘대모산 너머 남한산 넘어빛 뿜으며 넘쳐올 때면막 시작한 새해가 실감날 거야 또렷이 아침이 떠오를 거야 희망, 어린 계획들도 세워 두었고어김없는 시간이 예고대로 다가온다네 새해도 아침처럼 떠오르겠지밝은 날 새로 시작하는 널손 잡아 주겠지 첫날의 아침 햇살서로 나누겠지 그때까진아직 어둡고바람은 찰 거야해야 할 일이남아 있고밤은 새었어도갈 길은 먼아침 아닌 새벽이재촉하는 새벽이(2016.01.01)
[쓰다] 쓸 것이다
쓰다가 골라 쓰고 바꿔 쓰고 고쳐 쓰고 달리 쓰고 무릅쓰고 힘쓰고 뒤집어쓰고 받아 쓰고 끌어다 쓰고 입맛 쓸 것이다 어쩌랴 끌어다 쓰고 받아 쓰고 뒤집어쓰고 힘쓰고 무릅쓰고 달리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고 골라 쓰면서 계속 쓸 것이다 (2015.01.15)
[쓰다] 단어에 대하여 2
크고 작은 나라의 경계들에서 유랑하는 품사들이 사라지거나 명사로 바뀌는 언어의 주술이 목격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가르치다는 교육이 되고 알다는 지식이 된다 보다는 경험이 되고 느끼다는 감각이 된다 하다와 되다는 이름 없이 사물들을 따라다니고 있다는 힘들게 살아남아 지배자들이 어떻게 지배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게 한다 주문은 매번 짧고 빨랐다 무슨 말인지는 너무도 분명히 들렸으나 뜻을 아는 이는 없었다 깃발을 든 명사들이 소나기처럼 몰아쳐 다녔다 모호한 것들은 단죄되고 목이 베어져 아직 빛 들지 않은 그늘에 버려졌다 아직 죽지 않은 몇몇 알다 보다 느끼다 하다 되다 있다 같은 동사들이 응달에서 다리를 잃고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2015.01.10)
[쓰다] 단어에 대하여 1
학교는 명사를 가르쳤다 나는 세상의 사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명사들은 다투어 서로 다른 깃발들을 앞세우고 세밀한 문양을 상징처럼 자신의 어깨 위에 붙였다 그때마다 경계가 생겼다 세상의 사물들이 사물들의 세상을 만들어갈 때마다 나는 단어장에 그것들의 이름을 올렸다 눈이 밝아졌다 사물들의 이름으로 가득찬 단어장은 백과사전처럼 무료했다 (2015.01.10)
[쓰다] 행에 대하여
행과 행 사이는 얼마나 먼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날카롭게 아픈가 행을 만나면 한 걸음에 지나쳐 버리려다가도 매번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는 것인가 지나가지도 않은 징검다리 하나씩 건져 올리는 것인가 사랑하지도 못하고 미워할 수도 없으면서 행을 넘어가기 전에 모든 걸 걸게 되는 것인가 티도 나지 않으면서 행 사이에 끼어서는 나는 여전히 생각하는 것인가 (2015.01.10)
[쓰다] 새해가 되었네요 해는 안 떴지만 새해는 새해답게
새 해 맞고 새 밥 먹고 새 옷 입고 새 차 타고 새 님 보고 그렇게 새 날, 새 아침 맞고 새 노래 듣고 새 마음 갖고 새 거릴 걷고 새 세상 보고 그렇게 새 복도 받으세요 새 별 보고 새 꿈 꾸고 새 눈 뜨고 새 문 열고 새 손 잡고 난 이렇게 (2015.1.1.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