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이 그랬다는 것이다 만나기 전부터 오래 우리의 관계는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장만해 두셨다는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 그 속에 굳어져 있었던 당신의 거울 이미지 어린 시절은 서로에게 장남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커 가면서 종교라는 믿음의 회의라는 형식과 회의의 믿음이라는 형식으로 서로 충돌하면서도 다 커서 서로의 삶에 대한 간섭으로 부딪----히----는 고통을 겹겹이 껴 안으면서도 커 가면서 집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지고 다 커서는 만나지 않는 시간의 간격이 길어지면서도 미워하고 미워하고 미워하고 미워하면서도 그렇게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관계는 (2)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신을 병원에 모시고 난 뒤 드문드문 얼굴을 보이면서 죽음이 저만치서 자기의 시간을 노래하고 특별히 집착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
하고 싶은 일들은 저만치 있는데, 거기 누가 있어 가로막고 서서 먼저 이것도 부리고 저것도 앞장서다가 이 일도 돕고 저 일에도 간섭하다가 내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찬찬히 발을 내딛으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그렇게 살아오며 어느덧 천리길만 꿈꾸다가 그 길에 나설 길 없고 어리숙한 수고가 켜켜이 쌓여 새로 천 리 길을 이루고 그 길 어귀에 나의 어리석은 고뇌가 낡은 편자처럼 뒹구는데, 나는 한 걸음, 호사가의 말 다음엔, 천리길, 이런 몽상가의 꿈이 닿지도 못하는, 저만치, 가기만 했어도 되었는데, 나는 (2011.06.29) (그림 자료 출처 : ....는 오래 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문제란 세상으로의 투신도 아니고 졸업을 할까 말까 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의 끝도 아니고 -었었-이었었다, 이렇게 지금은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쓸 수 없었다 -었었-은 80년대 초반까지는 완료로 배웠고 80년대 중반 이후론 낭비였으니까 완료는 과거를 중첩시키고 중첩되는 것은 축적되는 게 아니라 그저 불필요하다고 떠밀려 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었었- 하며 혀를 잇몸에 부딪힐 때마다 잘리고 떨어져 나가 없어지는 기억들이 안타까웠던 것이었으니까 나도 동조를 했던 거다 -었었-을 쓰지 않고 아니 -었었-을 쓰지 못하고 알고 보면 완성된 기억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렇게도 이룬 것 없이 방황하면서도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괴로웠었었던 것이니까 (2011.06.23)
책 읽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녀는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가능성에 금 그어 놓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을 붙잡아 놓지 못한다 그-녀를 감시할 수 없다 책은 그-녀의 행동을 막을 수 있다 책이 그-녀의 마음을 붙잡아둘 수 있다 책만이 그-녀를 감시할 수 있다 그-녀를 묶어놓을 책을 가져다 주어라 그-녀를 오랜 생각에 빠지게 하여라 그-녀를 스스로 감시하게 하여라 그-녀는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 위험하다 책은 알고 있다 (2011.01.10) Woman Reading in an Interior, by Carl Holsoe 사이트 여행 중에 우연히 아래와 같은 블로그 게시물을 보았다. 책 읽는 여자들이다...라.... http://blog.naver.com/gisant/10030006124
집으로 돌아와 연달아 아홉 번을 방귀 뀌었다 크고 작은 방귀들이 비로소 제 소리를 찾았다 맞지 않는 인간들에 응대하느라 억누르던 방귀가 세 번, 묻지 않는 학생들을 견뎌 내느라 참고 있던 방귀 한 번, 거기에 체면 때문에 방귀 두 번, 소소한 일들에서 뀌다 말고 그만 둔 방귀들까지 도합 아홉 번이다 이걸 참느라 온갖 구질한 냄새와 싫은 소리 내뿜었다 그걸 감추느라 짐짓 모르는 척하는 표정과 엉뚱한 관심 내보였다 (2009.08.31)
선선히 열리지 않는 문 손잡이 돌려 밀어도 열리지 않는 문 몸으로 밀어내려 해도 꿈쩍 않는 당겨도 열리지 않고 끌어도 열리지 않는 문 결국에는 너는 너 혼자뿐인 내가 그려 넣고도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문 열리지 않아 좌절하는구나 천국의 문 경주하지도 않고 쟁론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는 (2009. 03)
하필 그때 방송에 나온 구질구질하고 유쾌하던 이 잡는 얘기에 어린 시절 겨울 화롯가에서 옷 벗어 불에 쬐며 똑같은 경험을 했던 얘기를 덧붙이며 신나게 꺼내들다가 택시운전기사 아저씨와 키득거리다가 궁금해졌다 내가 가르치는 스무 살 청춘들과는 소통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신이 나 있는 나의 기억 속의 이들은 어디 갔을까 증명도 할 수 없고 옛이야기로 물릴 수도 없는 이 생생한 허구가 내 기억 속의 온갖 사태들을 호출해 낸다 이 어정쩡한 사십대는 한때 유신 시대 끝물에 떠밀려 칠십구년 시월이 우울하도록 강요당했고 책을 덮고 그 대신 책을 꺼내 읽으며 그러면서도 책을 부둥켜안고 놓치지 않으려고 거리에 나가서도 팔사년, 팔오년, 팔육년, 팔칠년 시간의 능선 아랫길을 조심조심 걸었더랬지 황공하게도 삼팔육이라는 이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