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지나서 상주 김천 넘어가는 길은 한창 배가 고플 때였다 불을 밝혀 식당을 찾아 내달리는 고개와 모퉁이들은 교대하며 식탐을 선동하고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 속도를 줄였다가는 내지르며 차는 반복하여 식육 식당들이 연이어 자리 잡은 더 깊은 길로 들어섰다 확고한 편견이 내 어깨 너머로부터 팔을 뻗어와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 거기 식육 식당에선 어떤 야만이 벌어지는 게요? 잘 갈린 칼 대신 도끼가 돌려 있을 법한 식당 주방이 언뜻 보이고 사라질 때마다 자취처럼 차창에 남겨진 '식육'에서 식인을 연상하고 식당 뒤켠 어딘가의 능지처사(凌遲處死)를 연상하고 소나 돼지의 고통스런 사람 흉내를 연상했다, 초파일 연등처럼 식육 식당들이 그림자를 흐려 가며 쫓아오고 차는 가슴을 움찔거리다 내달렸다, 경험이 내 ..
(자료) 괴테(Goethe, 1749-1832)는 그의 제3부에서 “한 작가의 작품 속에는 그의 엄격한 오성, 순진한 감성, 활발한 구상력,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훌륭한 관찰, 각종의 차이에서 오는 특색 있는 묘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에서는 “작가의 문체는 그의 내적인 자아의 참된 표현”이라고 했다. 괴테는 누구든지 명석한 문체를 쓰려면 우선 그 정신을 명석하게 해야 하고, 위대한 문체를 가지려면 우선 그 자신이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위대한 문체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이다. 괴테의 주장은 ‘인격을 문학의 발달 원리(The Principle of Literary Growth)’로 보는 관점과 일치한다. 프랑스의 작가 뷔퐁(G. L. L. Buffon, 1..
집으로 돌아와 연달아 아홉 번을 방귀 뀌었다 크고 작은 방귀들이 비로소 제 소리를 찾았다 맞지 않는 인간들에 응대하느라 억누르던 방귀가 세 번, 묻지 않는 학생들을 견뎌 내느라 참고 있던 방귀 한 번, 거기에 체면 때문에 방귀 두 번, 소소한 일들에서 뀌다 말고 그만 둔 방귀들까지 도합 아홉 번이다 이걸 참느라 온갖 구질한 냄새와 싫은 소리 내뿜었다 그걸 감추느라 짐짓 모르는 척하는 표정과 엉뚱한 관심 내보였다 (2009.08.31)
“재미있어요.”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물었는데 아이가 더도 아니고 (물론 덜도 아니겠지만) 한마디 표현으로 간단히 대답했다면 여러분은 이 글은 주의 깊게 읽어둘 필요가 있다. 아이의 표정이 책 내용이 그저 그랬다는 듯이 심드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못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또랑또랑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이 글은 이를테면 “재미있었어요.” 같은 한 단어 문장의 반응에 대한 얘기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독서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보통 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개의 글이 합쳐진 것으로 하나의 주제로 간단히 평하기가 쉽지 않다. 책에 대한 전체적 인상을 ‘재미있다’라고 표현했다면, 이 아이는 읽은 내용을 통합적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도 있다..
70년대를 디스코에 목말라 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이 있었다. 80년대를 ‘매카닉’(mechanics)에 미쳐 살았던 얼굴 하얀 중학생이 있었고, 90년대를 게임에 빠져 살았던 사복 입은 중학생도 있었다. 다들 입시에 중독되어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것만 같았던 시대였지만, 어딘가에서는 꼭 이러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 수는 결코 적지만은 않았다. 이쯤 얘기하고 나면, 여러분은 그 다음 대목을 예상한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가 참담해졌다고 말하는 건 너무 뻔한 얘기일 터이니 오히려 그들이 성공했다는 줄거리가 나올 게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예상할 줄 았았다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동의한다는 고갯짓을 한다.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때의 중학생들 가운데에는 지금 신세대 문화 평론가며, 기계역학 ..
2009년 6월 29일자 뉴스위크 인터넷판(Newsweek Web Exclusive)에 Peter W. Bernstein이 쓴 배경 기사가 있더군요. (Inside Newsweek's Top 100 Books: The Meta-List) 그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스위크의 최고의 책 100선은 다른 목록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목록들의 목록이다. 말하자면 메타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후기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가 20세기의 최고 소설 100선에 드는 근대 도서관 목록을 위한 배심원단이라고 묘사한) 평균 연령 69세의 '완전한 백인이며, 그 대부분이 남성인, 다소 노쇠한' 문학 형식들의 그룹을 조합해 넣지는 않았다. 그(술레진저) 가 그 ..
1. 비오는 날, 유년(幼年)의 느티나무, 황지우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유년(幼年) 부잣집 아이들은 식모가 벌써 데려가고 일 나간 우리 엄니는 오지 않았다 치(齒) 떨리는 운동장 끝 어린 느티나무 몸 속에선 이상한 저음(低音)이 우우 우는데 달 저물어오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빗줄기,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기어가는 것 같고 문고리에 매달린 동생들 이름 부르며 두 손에 고무신 꼭 들고 까마득한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었다 그 운동장으로부터 20년 후 이제 다른 생애(生涯)에 도달하여 아내 얻고 두 아이들과 노모와 생활수준(生活水準) 중하(中下), 월수(月收) 40여만(萬) 원, 종교 무(無), 취미 바둑, 정치의식(政治意識) 중..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네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