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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시 쓰는 것을 잊었더랬다.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라고 배운 뒤로 시는 써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었다. 나쁜 시 같으니라구. 아주아주.[독서비평] 창의적 책 읽기 1
“재미있어요.”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물었는데 아이가 더도 아니고 (물론 덜도 아니겠지만) 한마디 표현으로 간단히 대답했다면 여러분은 이 글은 주의 깊게 읽어둘 필요가 있다. 아이의 표정이 책 내용이 그저 그랬다는 듯이 심드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못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또랑또랑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이 글은 이를테면 “재미있었어요.” 같은 한 단어 문장의 반응에 대한 얘기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독서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보통 책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개의 글이 합쳐진 것으로 하나의 주제로 간단히 평하기가 쉽지 않다. 책에 대한 전체적 인상을 ‘재미있다’라고 표현했다면, 이 아이는 읽은 내용을 통합적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독서비평] 독서 취미 세대는 무엇을 남겼나
70년대를 디스코에 목말라 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이 있었다. 80년대를 ‘매카닉’(mechanics)에 미쳐 살았던 얼굴 하얀 중학생이 있었고, 90년대를 게임에 빠져 살았던 사복 입은 중학생도 있었다. 다들 입시에 중독되어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것만 같았던 시대였지만, 어딘가에서는 꼭 이러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 수는 결코 적지만은 않았다. 이쯤 얘기하고 나면, 여러분은 그 다음 대목을 예상한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가 참담해졌다고 말하는 건 너무 뻔한 얘기일 터이니 오히려 그들이 성공했다는 줄거리가 나올 게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렇게 예상할 줄 았았다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동의한다는 고갯짓을 한다.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때의 중학생들 가운데에는 지금 신세대 문화 평론가며, 기계역학 ..
[인용] 뉴스위크가 뽑은 최고의 책 100선
2009년 6월 29일자 뉴스위크 인터넷판(Newsweek Web Exclusive)에 Peter W. Bernstein이 쓴 배경 기사가 있더군요. (Inside Newsweek's Top 100 Books: The Meta-List) 그 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스위크의 최고의 책 100선은 다른 목록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목록들의 목록이다. 말하자면 메타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후기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가 20세기의 최고 소설 100선에 드는 근대 도서관 목록을 위한 배심원단이라고 묘사한) 평균 연령 69세의 '완전한 백인이며, 그 대부분이 남성인, 다소 노쇠한' 문학 형식들의 그룹을 조합해 넣지는 않았다. 그(술레진저) 가 그 ..
[시]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 황지우
오늘 오후 5시 30분 일제히 쥐(붉은 글씨)를 잡읍시다-벽 4, 황지우 1984년은 쥐때 해이다. 재앙의 날들이여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다오. (황지우 시선집 , 창비)
[적용] 식물적 상상력
1. 비오는 날, 유년(幼年)의 느티나무, 황지우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유년(幼年) 부잣집 아이들은 식모가 벌써 데려가고 일 나간 우리 엄니는 오지 않았다 치(齒) 떨리는 운동장 끝 어린 느티나무 몸 속에선 이상한 저음(低音)이 우우 우는데 달 저물어오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빗줄기,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기어가는 것 같고 문고리에 매달린 동생들 이름 부르며 두 손에 고무신 꼭 들고 까마득한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었다 그 운동장으로부터 20년 후 이제 다른 생애(生涯)에 도달하여 아내 얻고 두 아이들과 노모와 생활수준(生活水準) 중하(中下), 월수(月收) 40여만(萬) 원, 종교 무(無), 취미 바둑, 정치의식(政治意識) 중..
[텍스트]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네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
[텍스트] 자유, 폴 엘뤼아르
국민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어늬 이름을 쓴다 누더기가 된 하늘의 옷자락 위에 태양이 곰팡 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방앗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텍스트]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 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 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 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Le pont Mirabe..